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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직업

‘디지털 유품 정리사’의 하루: 죽음 이후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직업

디지털 유품 정리사란 누구인가 — 데이터의 사후 세계를 관리하는 사람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생전에 수많은 데이터를 남긴다. 사진, 이메일, SNS, 금융 기록, 클라우드 문서까지—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디지털 흔적”이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이 데이터는 누가 관리할까? 바로 그 공백을 메우는 직업이 **디지털 유품 정리사(Digital Estate Organizer)**다.

이들은 고인의 온라인 자산을 정리하고, 가족이나 법적 상속인에게 데이터를 안전하게 전달하거나 삭제하는 일을 담당한다.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장례지도사에 가깝다. 개인정보 보호법, 저작권, 데이터 소유권 등 복잡한 법적 이슈를 이해해야 하며, 동시에 유족의 감정적 치유를 도와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SNS 계정 삭제 요청, 암호화된 파일 복구, 클라우드 데이터 이전 등의 업무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사후 관리 서비스가 하나의 전문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유품 정리사’의 하루: 죽음 이후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직업

 

 

업무의 실제 — 죽음 이후 남겨진 데이터의 지도 그리기

디지털 유품 정리사의 하루는 매우 체계적이다. 첫 단계는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메일, SNS, 구글 계정, 온라인 뱅킹, 구독 서비스 등 **디지털 계좌 목록(Digital Footprint Map)**을 작성한다. 이후 접근 가능한 데이터와 암호화된 영역을 구분하여, 복구 혹은 삭제 전략을 세운다.

그다음은 기술적 작업이다. 데이터 복구 소프트웨어와 포렌식 도구를 사용해 손상된 파일을 복원하거나, 중요 정보(계좌, 비밀번호, 가족 사진 등)를 유족에게 안전하게 전달한다. 일부는 법원 명령이나 공증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법률 지식과 정보보안 기술을 모두 갖춰야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유족 상담 능력도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유품 정리사가 상담심리 자격증을 함께 취득하며 **디지털 애도 서비스(Digital Grief Service)**를 병행한다. 이처럼 디지털 유품 정리사는 기술, 법, 심리의 교차점에 서 있는 직업이다.

 

필요한 역량과 자격 —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이 직업의 핵심은 단순한 IT 기술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감과 신뢰성이다. 고인의 개인 정보가 담긴 데이터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보안 사고 한 번이면 회사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유품 정리사는 정보보안 전문가 수준의 보안 의식, 비밀 유지 의무, 법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공학, 정보보호, 포렌식 전공자가 이 분야에 진입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례 서비스 기업이나 법률사무소와 협업하는 형태로 확장되면서, 비전공자도 자격 교육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한국에는 아직 공식 자격증 제도가 없지만, 일본과 유럽에서는 Digital Legacy Planner 혹은 Data Executor라는 이름으로 민간 자격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 접근권, 계정 해지 절차, 암호 관리 정책 등을 표준화해 서비스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고인의 삶을 존중하면서 기술적으로 안전하게 마무리하는 ‘디지털 장례 윤리’**다.

 

 

디지털 유품 정리사의 미래 — 죽음 이후에도 남는 정보의 시대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안에 “디지털 사후 관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 SNS, 클라우드, 가상자산 등 온라인 자산이 늘어나면서, 인간의 죽음 이후에도 데이터가 생명처럼 남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사망자의 계정을 ‘추모 계정(Memorial Account)’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도입했고, 구글은 일정 기간 로그인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데이터를 삭제하거나 위임하는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운영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늘어날수록, 이를 관리하고 조율할 전문 인력이 필요해진다. 디지털 유품 정리사는 단순히 삭제나 정리 역할을 넘어서, 고인의 디지털 존재를 사회적으로 존중받게 하는 전문가로 발전할 것이다. 또한 AI 기술과 결합해 생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아바타 메모리 서비스, 가상 추모관 관리 등의 새로운 산업도 생겨나고 있다.
결국 디지털 유품 정리사는 “죽음 이후에도 남는 정보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직업이다. 그들은 데이터를 다루지만, 실은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는 마지막 인간 전문가다.